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 OST 타임라인을 처음 훑어봤을 때, 저는 그냥 배경음악 목록 하나 확인하는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트랙 하나하나가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음악이 드라마의 감정선을 단순히 받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서사를 구성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진 역동성과 아련함이 청각적 레이어로 얼마나 정교하게 쌓일 수 있는지, 이 사운드트랙이 그 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청춘 서사를 완성하는 OST의 정서적 구조
제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타임라인을 따라 들어봤는데,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명확하게 갈린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초반 트랙들은 속도감과 의지가 살아 있습니다. 8분대에 등장하는 '러닝 앤 고(Running & Go)'의 정서가 대표적인데, 넘어지더라도 뒤돌아보지 않고 더 빠르게, 더 가볍게 나아간다는 메시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선언처럼 들립니다. 펜싱 선수 나희도가 피스트 위에서 땀을 흘리며 몸으로 써 내려가는 성장의 언어와 이 트랙이 맞물리는 방식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음악 감상에서 자주 쓰이는 개념으로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가 있습니다. 내러티브 아크란 이야기나 음악이 갈등과 긴장을 쌓아 올렸다가 해소하는 감정적 곡선을 말합니다. 이 OST는 그 아크를 꽤 의도적으로 구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초반의 치열한 의지에서 출발해 중반의 연대와 위로를 거쳐, 후반으로 갈수록 노스탤지어(Nostalgia)로 수렴됩니다. 노스탤지어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라,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달콤하고 씁쓸한 감각을 동시에 가리키는 말입니다.
저는 평소 플레이리스트를 큐레이션 할 때 트랙 간 감정의 흐름, 즉 다이내믹 레인지(Dynamic Range)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다이내믹 레인지란 음악의 가장 조용한 부분과 가장 강렬한 부분 사이의 감정적 폭을 의미합니다. 이 OST는 그 폭이 넓습니다. 긴박하게 달려가는 4분대의 트랙이 있는가 하면, 슬픔을 상대에게 던져놓으라는 5분대의 조용한 위로가 뒤따릅니다. 이 낙차가 청자로 하여금 감정을 쉬어갈 틈 없이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합니다.
이 OST가 청각적으로 효과적인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전반부의 치열한 의지와 속도감이 캐릭터의 성장과 맞물려 서사적 설득력을 높임
- 중반부의 담백한 위로 트랙들이 감정적 이완을 제공하며 청자와의 연대감을 형성
- 후반부의 감각적 회상 구조가 시청자에게 짙은 여운을 남기는 역할을 함
노스탤지어로 수렴하는 후반부, 아쉬움과 아름다움 사이
15분대 이후의 트랙들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맑은 바다와 햇살 속 행복했던 꿈의 잔상이 향기와 바람이라는 감각적 매개로 되살아나는 구성을 두고, 청춘의 서정을 음악으로 완성했다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 흐름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제가 아끼는 인디 어쿠스틱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가슴 벅찬 포근함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반복해서 듣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15분대부터 23분대까지 이어지는 후반부 트랙들이 감정적으로 너무 균일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멀어지는 체온', '어색하지만 혼자가 아님', '서두르지 않는 기다림' 같은 정서가 반복되면서, 초반부에 살아 있던 당차고 주체적인 에너지가 서서히 흐릿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청춘을 아름답게 미화하는 방식이 다소 정형화된 코드(Code)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코드란 음악적 진행 패턴이기도 하지만, 감정 표현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공식적인 서사 문법을 뜻하기도 합니다.
음악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신경과학적으로도 꽤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음악은 뇌의 보상 회로와 편도체를 자극해 강한 감정 반응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으며(출처: 한국뇌연구원), 특히 익숙한 멜로디 패턴이 과거 기억과 연결될 때 노스탤지어 반응이 극대화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이 OST가 그토록 많은 시청자에게 감정적으로 깊이 파고든 것은 단순히 드라마의 힘만이 아니라, 이러한 청각적 심리 기제를 효과적으로 활용한 덕분이라고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서로의 짐을 나누어 들고 묵묵히 곁을 걷는다는 20분대의 연대 서사가 가장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감정은 거창한 말에서 오지 않습니다. 세상에 치여 지쳐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어깨를 빌려주던 사람, 내 페이스에 맞춰 보폭을 늦춰준 사람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기억이 이 트랙과 겹쳐지면서, 음악이 단순한 청각 경험을 넘어선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그것이 OST가 가진 고유한 힘, 즉 이모셔널 앵커링(Emotional Anchoring)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모셔널 앵커링이란 특정 음악이 특정 감정이나 기억과 연결되어 그 감정을 즉각적으로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연결 고리를 말합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결국 이 OST를 한 편의 글로 읽는다면, 전반부의 치열한 문장들이 후반부에서는 조금 과하게 서정적인 시로 바뀐 셈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청춘이라는 단어가 가진 날카롭고 뜨거운 결을 조금 더 끝까지 붙잡고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정리하면, 스물다섯 스물하나 OST는 청춘의 성장과 상처, 연대와 이별을 음악적으로 정밀하게 구성한 사운드트랙입니다. 마음이 헛헛한 밤, 처음부터 끝까지 타임라인 순서대로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전반부에서 후반부로 이어지는 감정의 이동을 온전히 따라가다 보면, 이 음악들이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청춘이라는 계절을 함께 통과한 무언가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저는 이 플레이리스트를 소장용으로 오래 두고 꺼내 들을 생각입니다.